지난주 굉장히 흥미로운 클라이언트 한 분을 만났다. 회사의 상호명은 00사였는데, 인터넷에 쳐보니 디자인과 마케팅 대행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였다. 그런데 디자인 회사에서 이상하게 치과 홈페이지 제작을 의뢰해주셨다. 디자인 회사에서 왜 치과 홈페이지 제작을 의뢰하지? 호기심이 들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런걸 흔히 '재하청'이라고 부르더라. 쉽게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클라이언트(치과)는 대행사에게 홈페이지 제작 의뢰를 맡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행사들은 이런 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소화할 능력이 없다. 마케팅만 가능하거나, 디자인만 가능하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해줄 수 있는 다른 업체를 찾는다. 우리 회사 같은 곳 말이다. 그리고 우리 회사 같은 곳들에게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금액보다는 낮은 금액으로 프로젝트를 맡긴다. 클라이언트한테 50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개발사에게 200만원에 맡긴다. 그리고 대행사는 300만원을 챙긴다.

클라이언트만 바보 되는 재하청 구조

앱, 웹사이트 개발 시장에서 이런 재하청은 정말 흔하다. 일단 가장 큰 손해는 클라이언트가 본다. 200만원에도 충분히 제작 가능했던 비용을 300이나 더 주고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뭐 하나 수정하려고 해도 클라이언트 -> 대행사 -> 개발사 -> 대행사 -> 클라이언트 이런식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지다 보니 뭐 하나 빠릿빠릿하게 진행되는게 없고 한 세월이다.

보통 이런 프로젝트들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설거지 프로젝트 라고 부른다. (660만원 외주 사기 당한 대표님 구출하기 글 참고 설거지 프로젝트란 개발사가 완성하지 못하고 도망친 프로젝트 혹은 개발사의 역량이 안되어 재하청을 주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이런 프로젝트는 제작 기한이 말도 안되게 짧은 경우가 많아 리스크도 크기 떄문에 우리는 보통 이런 프로젝트를 왠만하면 잘 맡지 않고, 견적을 평소 가격의 두 세배 부른다. 왜냐하면 그 정도 타임라인안에 프로젝트를 진행가능한 업체는 국내에 몇 안되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설거지 프로젝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클라이언트

매우 빡쳐있다. 일정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아 대행사를 조지지만, 일단 돈은 냈고,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대행사

안절부절 못한다. 화난 클라이언트를 달래주고 싶지만, 직접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에, 개발사한테 어떻게든 해결을 부탁하는 수 밖에 없다


개발사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대행사가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그 일정안에 해낸다. 얼마나 설거지를 빠르고 완벽하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몸값은 계속 뛴다.


놀랍지만 새벽 4시반이 맞다.


중간에 낑겨서 그만큼 고생도 많이 하신다


소프트웨어 외주시장의 하청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서 우리 포텐셜은 나름 활약하고 있다. 일정에 쫓기는 대행사 분들, 다른 업체에 사기 당해서 몇 백 ~ 수 천씩 날린 대표님등 한번 우리랑 일해보면 계속 찾아와주신다. 우리는 좀 덜 친절하긴 한데, 싸고 정확하고 빠르게 만든다.


위의 대행사와 진행한 1.5 주짜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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