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이라는 단어에 오래 시달려온 창업가가 내린, 신뢰도 0의 분류법`}

Jun 4th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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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업계에서 '비전'은 늘 칭송받지만, 망한 회사의 비전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비전파와 장사파 — 창업가를 둘로 나눠본, 신뢰도 0의 분류를 공유한다. 그리고 나는 왜 비전파에서 장사파로 넘어왔는지.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비전'이라는 단어는 나를 오랫동안 괴롭힌 주제였다. 비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쉽게 풀어본다면 '내가 인생을 다 걸어서라도 풀어보고 싶은 문제, 기업의 목표, 창업팀의 철학' 정도가 될 것이다.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기업의 철학 — '비전'이 필요하다는 게 스타트업 업계의 주장이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비슷한 창업 교육에 들어가면 일반적인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하지만 때때로 2번과 3번은 순서가 뒤바뀌어 나타나기도 한다.
3) '요즘 Gen AI가 핫한데, 이걸로 할 만한 아이템 없나? 이걸 HR, 디자인, 마케팅 등등에 적용해보면 어때?'
2) '우리 회사의 비전은 앞으로 AI를 통해 HR, 디자인, 마케팅을 혁신하는 것에 있습니다.'
식으로 말이다. 이런 순서 뒤바뀜은 매우 교묘하게 나타나서, 창업가도 본인이 비전을 먼저 정했다고 믿게끔 인지부조화를 만든다. 지난 10년간의 내 모습이 그러했다.
그리고 서비스가 망하면, 비전을 포기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오랫동안 자책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망해서 접는 서비스가 5~6개를 넘어가자, 나는 비전을 잘 포기하는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 주변 대표들을 유심히 보면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다. 비전파와 장사파다. (장사파라는 어감이 좀 그래도 그냥 이해하기 쉽게...) 이 두 분류는 칼로 자르듯이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스펙트럼에 가깝다. 아래는 내가 재미 삼아 만들어본, 신뢰도 0의 분류다.
| 항목 | 비전파 | 장사파 |
|---|---|---|
| 학력 | 고학력자임 | - |
| 어릴 적 환경 | 유복함 | 유복하지 않음 |
| 관심 분야 | 세상의 변화에 주목 (딥테크, 혁신, 미래) | 인간의 본질적 니즈에 주목 (건강, 돈, 섹스) |
| 창업 동기 |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 처자식·부모 부양, 윤택한 삶 |
| 창업 스타일 | 공동 창업 | 개인 창업 |
| 자금 조달 | 투자, 지원사업, 엑셀러레이팅 | 부트스트랩 |
| 분야 | 딥테크, 스타트업 | 유통, 제조, 프랜차이즈, 지식창업 |
| 폐업률 | 높음 | 낮음 |
| 현금 창출 능력 | 낮음 | 높음 |
| Study IQ | 높음 | - |
| Street IQ | - | 높음 (현실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능력) |
신기하게 이 두 집단은 서로가 서로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비전파는 장사파를 보면서 '그건 장사야, 사업이 아니고'라는 생각을 품으며, 장사파는 비전파를 보면서 '그래서 월에 얼마 버는데'라는 생각을 품는다.
비전파냐 장사파냐의 문제는 마치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하는 문제처럼 정답이 없다. 내가 짜장면을 좋아하면 짜장면을 먹으면 되는 것이고, 짬뽕을 좋아하면 짬뽕을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비전파에서 시작해 장사파로 이동한 케이스다. 나는 과거 짜장면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짬뽕을 더 좋아한다. 망한 회사의 비전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매슬로우 5단계 욕구만큼 인간과 기업을 설명할 때 좋은 프레임워크가 없는 것 같다. 우리 회사 포텐셜은 어느 단계까지 올라와 있을까? 얼른 생존의 단계를 벗어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는 방글라데시의 대표적인 종교 명절인 Eid 기간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생각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감사하다. Eid Mubarak.
포텐셜(Potential)은 지금 생존의 단계를 지나 의미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창업가라면, 편하게 이야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