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사비로 떠난 FDE 실험기 — AX 시행착오 3편`}

Jun 10th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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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LA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 있던 내내 몸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열은 오르락 내리락 했고, 비행기 안에서 PRD를 읽겠다는 대담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정신이 붙어있을때마다 최대한 읽으려 노력했고 나머지 읽지 못한 부분은 호텔에서 채우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여기서 잠깐) 서울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사비를 들이면서 내가 클라이언트 회사에 직접 방문하게 된건 한 가지 가설을 실험해보기 위해서 였다. 요즘 미국은 (사실 요즘이라기엔 몇 달 전부터 이미) FDE라는 새로운 방식의 개발방법론이 유행 중이다. 한글로 굳이 번역하자면 '파견 근무 개발자'와 어감이 비슷하지만 역할이 다르다. FDE는 한국의 파견 근무 개발자 처럼 수동적으로 업무에 임하기 보다는, 클라이언트 회사 내부에서 내부자로서 주의깊게 관찰한 후, 관찰된 비효율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그 자리에서 제안하고 그 자리에서 만들어 데모를 제공한다. 개발 능력 뿐만 아니라 관찰력, 공감능력, 사업센스 등이 필요한 다재다능한 포지션이다. (그래서 매우 비싸다)
다시 돌아와서, LAX 공항에서 내린 캘리포니아 날씨는 정말 끝내줬다. 클라이언트 쪽에서 픽업을 와주셨고, 맛있는 저녁식사도 같이 했다. 한국에서는 고열과 감기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멋진 저녁노을을 보고있으니 피로가 풀렸다.
호텔로 복귀하니 온갖 피로가 밀려왔다. 시차 적응, 떨어지지 않은 고열, 계속된 기침으로 맛이 간 목,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해야할 일이 여전히 남았다. 다양한 조력자들의 도움(와이프, 장모님, 시터, 클라이언트)으로 어렵게 만들어낸 출장이기 때문에 남은 72시간의 시간동안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야 했다. 막중한 부담감에 잠을 설쳤고, 그 와중에 조금씩 짬을 내 영상을 찍었다. (왠지 나중에 추억이 될 것 같아)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그래도 침대에서 자니 피로가 풀렸고,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깰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 쪽에서 편의상 앞으로 메튜(가명)라고 부르겠다. 메튜가 호텔로 픽업을 나왔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던 클라이언트 쪽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미국 회사에 처음 가본 소감은 뭐 어디든 사람들 일하는 곳은 비슷하더라. 도착해서 몇 시간 동안은 공장을 둘러보며 이 팀이 어떤식으로 일하는 지만 계속 관찰했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열심히 질문하고 듣기만 했다.
어떤식으로 일하나?
왜 그런식으로 일하나?
일하면서 제일 시간이 많이 쓰이되, 비생산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어디인가?
누가 이 일을 소유하고 있나?
계속해서 듣고, 기록하고 또 질문했다. 그리고 나만의 언어로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명해보았다. (이게 맞아?) 오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필요한 정보들은 모두 모였고, 내가 결과로서 보여줄 차례였다.

오후가 되었다. 오후에는 클라이언트가 도입을 고민중이던 SaaS업체와 줌 미팅이 잡혀있었다. 역시나 끊임 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 업체 왜 쓰려고 해?
내가 이 미팅 같이 참가해도 될까? 내가 도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것 같은데
해당 SaaS업체와의 미팅에 같이 참가하면서, 우리 클라이언트가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 왜 이걸 도입하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해당 미팅 내내 해당 제품을 주의깊게 살펴보았고, 미팅이 끝나자마자 메튜에게 이렇게 전했다.
Lukas
'내가 보니 너희한테 이거 꼭 필요할 것 같아. 나한테 3시간만 줄래? 내가 이거 만들어서 우리 ERP에다가 달아놓을게'
메튜
'Lukas, 그게 가능해? 가능하면야 좋겠지만'
Lukas
'응 3시간만 줘봐'
메튜 옆자리에서 그렇게 뚝딱뚝딱 만들었다. 지난 몇달간 수도 없이 만들고 부수고, 하네스를 갈고 닦았던 지라 자신 있었다. 그렇게 3시간 만에 그자리에서 만들어 선보였고, 메튜는 굉장히 놀랐다. FDE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 였다. 이 것만으로도 이번 출장의 값어치는 다 했고, FDE가 기존 소프트웨어 외주 모델보다 갖는 파급력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정말 다양한 스토리가 있었지만 대외비라 일단 이정도로 마무리를...
내게 주어진 48시간이 어느덧 얼마 남지 않았다. 둘째날도 양상은 비슷했다. 공장을 이리저리 누비며, 비효율을 찾고 그자리에서 고쳤다. PRD도 필요없고, 구닥다리 디자인/요구사항 정리 회의도 없었다. Problem -> Build, Problem -> Build 의 연속이었다. FDE로서 실제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이 경험이 과연 한국시장에서도 통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는 가능할것 같은데, 그 이상은 과연 가능할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 해결 감각이 있는 개발자가 이 세상에는 정말 드물다.
일을 마무리하면서 멋진 두가지 선물을 받았다.

일을 하다가 클라이언트랑 한국에는 트레이더 조 가방이 유행이다 라는 말을 가볍게 했는데, 이 말을 어떻게 들으시곤 메튜, J(가명), 사모님(대표님 와이프) 분이 새벽부터 오프런 해서 종류별로 사다 주셨다. (사진을 분명히 찍어놨는데 어디있는 지 모르겠네)
사실 이번 출장은 클라이언트 측에서 요청하지 않고 오직 FDE를 테스트 하기 위해 내가 자발적으로 준비한 출장이었다. 비행기표와 비용을 모두 내가 부담했고, 내가 먼저 가겠다고 했다. 사실 이 질문을 묻기 위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메튜와 마지막으로 퇴근하는길에 두가지 질문을 했다
Lukas
메튜, 우리 방글라데시 팀 어때? 내가 상처받는걸 고려하지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
메튜
한국에서는 모르겠는데, 미국에서는 너희와 같은 업체가 정말 많아. 인도/파키스탄/동유럽 등등 다양한 국가에서 연락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너희랑 일하는 이유는 Lukas 너때문이지 너희 팀 때문은 아니야.
Lukas
그럼 내가 요 며칠간 너희 회사와 일했던 경험은 어때? 이게 FDE라고 해서 우리가 요 며칠간 한 것처럼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회의하고 그자리에서 만드는 거거든
메튜
이건 솔직히 끝내줘. 아마 많은 회사들이 하길 원할거야. 근데 너희 와이프가 싫어하지 않을까? ㅎㅎ
아들아, 딸아 나중에 커서 이 블로그를 보아라 너희 분유값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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